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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인생공부

03. 경쟁심이 만든 병든 사회

by oculis 2023.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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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쟁심의 학습

한국은 빈곤과 투쟁의 시대를 겪었다. 부족했던 교육과 좁아지는 기회 늘어가는 나이 속에 사회는 마치 펜싱 경기처럼 찰나의 순간에 남을 찔러야 하는 생존을 위한 투기장이 되었다. 펜싱의 칼 끝에 서서 이 사회를 관통한 세대가 있다. 불의에 맞서 항거하던 세대이면서 젊을 때는 평균 성장률 10%대의 고성장 저개발 국가에서 무수한 기회를 누리고, 나이가 들며 변해가는 사회에서 좁아진 기회와 과도한 경쟁에 지쳐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진 세대. 한때는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라는 의미로 386세대라 불렸고, 그 다음은 586, 이제는 60대에 접어들며 86세대라 불리는 사람들, 우리 20대의 부모세대이다.
 
부모는 가치관을 제1유산으로 남긴다. 부모의 가치관은 자녀를 통해 답습된다. 30대와 20대가 같은 젊은 세대로 묶이지만 둘의 차이점은 과도한 경쟁의식이라고 생각한다. 30대의 부모 세대의 사회생활은 시작과 끝이 모두 기회로 가득했다. 40대의 부모는 농업에 종사하며 경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많았다. 20대의 경쟁심은 현대화의 과정에서 직장생활의 부품으로 사용되어 상처 받은 부모세대의 유산이다.

2. 비교와 불행의 메커니즘, 왜 20대는 불행한가

현대의 한국은 이전의 어떤 때보다 풍요롭다. 직업의 폭은 넓어지고 대우는 평등해졌으며 모든 분야에 전문가가 존재한다. 자신의 분야를 우직하게 파면 그 분야의 정점에 오를 수 있다. 모든 것이 공정하진 못해도 사회는 다양한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한다. 최소한 예전처럼 아파도 치료 받지 못하거나, 대학에 가지 못한 채 공장을 다니거나, 만삭의 몸으로 회사를 나가야 하는 시대는 지나쳐왔다. 그런데 결혼과 출산은 줄어들고 청년 자살은 증가한다. 특히 출산은 연일 최저치를 찍으며 뉴스의 핵심 소재가 된다. 한국의 침체는 단순히 저성장과 현대화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에 왔다.

언론은 20대의 불행이 SNS를 통한 비교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너무 일차원적인 이유이다. 왜 그들은 비교를 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비교하는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먼저 무엇을 비교하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데, 그들의 비교 대상은 절대 재벌이나 천재가 아니다. 나와 어릴 적 친했던, 그렇게 똑똑해보이진 않았던 것 같은, 돈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던 동네의 친구가 갑자기 명문대에 가고 좋은 직장을 들어가 성공하는 모습,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에 괴로운 것이다. 인생 전반을 들여다본 것도 아니고, 모두의 삶에는 각자의 불행이 있음을 느끼기 어려우니 막연한 부러움이 질병처럼 퍼져있다. 예전이었으면 자연스레 멀어지며 듣지 못할 소식을 SNS로 공유하게 되니 부러운 마음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언론이 헛발질하는 가장 큰 부분이 20대는 유명인의 성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저 명분이 더 좋으니 그런 사람을 부러워하는 척 할 뿐이다. 손흥민을 보면서 "나는 손흥민보다 축구를 못하니 축구를 하면 안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수저론도 비슷한 개념이라 생각한다. 주변의 특정인을 다수의 집단에 넣고 "금수저가 부럽다"라고 하면 직접적으로 "OOO가 부럽다" 라고 말하는 것보다 부담감이 덜 한 것이다.
 
두 번째 어떻게 비교하는가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엔 이 부분을 고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여기서부터 깊이 썩어 들어갈 것인데, 가끔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온 것 같기도 하다. 20대의 비교는 비교에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두고, 그 사람을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 사람은 앞서 말했던 부러움의 대상도, 금수저도 아니다. 보통 가깝고 비슷할수록 더 좋은 경쟁 대상이 된다. 눈앞의 남을 정복하면 자신은 한 단계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혹은 그런 심리가 그들에게 안정감이나 집중력을 주는 것인지 모르지만 비교는 곧 경쟁심리가 된다. 그것도 아주 좁은 수준에서의 경쟁 심리가 형성된다.
 
세번째로 이게 왜 문제인지와 왜 그들이 비교를 하게 되었는지 이다. 이건 사회 곳곳에 암덩이처럼 퍼진 경쟁심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재밌는 예를 들어보자.

내 얘기도 5%정도는 포함된듯...

28살 A군이 처음 엄마에게 맞은 건 중학교 1학년때였다. 시험을 못 봤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A를 때리고 난 뒤 항상 옆집 철수 얘기를 했다. 제발 철수를 이겨보라고 했다. A는 맞는 것이 너무 싫고 무서웠다. 맞지만 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다음 도덕 시험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되었다. 도덕 시험만 잘 본다면, 이 시험만 잘 보면 죽어도 좋겠다 생각했다. 매번 시험이 끝나면 A는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이번에도 철수보다 시험을 못 봤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A는 고등학교에 갔다. 고등학교는 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며, 딱 3년만 죽었다 생각하면 대학에 가서 얼마든지 놀 수 있다는 부모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중학교때는 철수를 싫어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철수가 싫었다. A는 한 번도 철수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항상 철수에게 비교를 당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 뿐이라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첫 시험, A는 철수보다 약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자신이 이긴 것이었다. 드디어 A는 철수를 이겨버렸다는 마음에 통쾌했다. 자신이 언제부터 철수를 싫어한 지는 모르지만, 저 나쁜 놈 새끼를 찍어 눌러버렸다는 사실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엄마는 A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아마 학부모 모임에 나가 자랑할 심산인 것이다. A의 아빠는 항상 사회가 지옥이라고 했다. A가 힘든 일을 얘기할 때면, 사회에 나가면 그보다 힘든 일이 많으니 당연하게 견디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을 찌르지 않으면 내가 찔리는 곳에 있어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 그마저도 잦은 야근과 직장 내 정치질로 만성 피로에 시달려 자기 할 말만 하고 A의 얘기는 듣지 않았다. A는 똑똑한 아빠의 말을 믿었다. "밟지 않으면 밟힌다..." A는 매일같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A도 대학에 갔다. 명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취업은 아주 잘 되는 학교였다. 전공은 어려웠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만 쳐다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항상 아는 것이라도 질문했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 대학만 거쳐 취업만 성공하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고, 그 취업에 중요한 이 전공과목만 잘하면 모든 게 성공이고 더 이상 고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새로 사귄 친구 훈이에게서 철수가 보인 것이다. A는 훈이를 밟지 않으면 자신이 밟힐 거라 생각했다. 저 훈이놈만 이기면 되는 것이었다. A는 훈이를 이기고, 철수를 이길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많이 풀어 쓰긴 했는데 대략 이런 느낌이다. A에게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나 포부, 목표나 방향성이 없다. 단지 한 계단을 더 올라가는 것만이 전부인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 명분을 부여하기 위해 주변 사람을 경쟁 상대로 삼는 것이고, 그렇게 된 이유는 명분을 무의식 속에 부여해 준 부모의 역할이 크다. 부모의 가치관이 답습되어 버린 것이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야만 성공의 쾌감을 느끼는 어긋난 성취감인 것이다.

3. 실패의 반댓말은 승리가 아니다

내 생각에 현대인의 가장 큰 착각 중 하나는 실패를 승리로 보상 받으려 하는 것이다. 왜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상대와의 승리와 패배와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 싫어 회피하기 위해 "나는 실패한 게 아니라 쟤한테 진 것이다" 라는 방어기제가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쟁 심리는 사회의 피로감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의 가치판단 체계의 전반을 손상시킨다. 왜냐? 경쟁 심리의 원인은 근시안적 사고이고, 근시안적 사고의 원인은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에 주입한 물질 만능주의이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는 일의 본질적인 가치 따위 알게 뭐냐는 병든 심리가 퍼져가는 것이다.

86세대와 사회 변화 → 물질 만능주의 → 근시안적 사고 → 경쟁 심리 → 과도한 비교 → 20대의 불행

이렇게 5단계의 결과물이 현재의 병든 사회를 만들었다. 병든 사회라 함은 과도한 경쟁 이외에도 과도한 허무주의가 포함된다. 자신의 실패를 보상해 줄 경쟁 대상을 찾지 못해 과도한 패배감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20대에 요즘 유행하는 말이 "앉아서 노력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다" 라는 말인 것 같다. 장담하건데 아니다. 애초에 이건 재능의 영역이 아니다. 차라리 수학 공부가 재능이라면 납득이 되겠다. (물론 고등과정까진 재능이 아니다.) 하지만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은 하루에 20분부터, 30분, 1시간, 2시간씩 늘려가는 것이다. 마치 헬스에서 중량을 늘려가는 것과 같다. 만약 3대 100을 못 드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운동에 정말 재능이 없는 것이 맞다. 하지만 대부분 3대 100을 들 수 있고, 3대 200쯤 부터 시작해서 10씩 꾸준히 늘려가다가 3대 4~500을 찍는 거지, 처음부터 500을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은 있는데, 아마 국적이 한국이 아닐거다.) 비슷하게 하루에 30분을 앉아서 공부를 못하겠다면, 그 사람은 재능이 없는 것이고 ADHD검사를 받아보길 바란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일단 30분 부터 시작해보자.
 
제발 내 친구들, 나와 같이 미래를 만들어 갈 20대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제발 본인의 인생에서 본인의 발전을 위해 투쟁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로부터 달라진 자신의 모습, 그것을 이뤄낸 본인의 능력에 매료되어 살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성장 그래프를 그려 끝 점을 찍으라는 것이다. 성장에 가속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포물선이 그려질 것이다. 아니라면 우상향 직선이 그려질 것이다. 어떻든 상관 없다. 일단 끝 점을 찍었으면 그려둔 경로를 조금 벗어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20, 30년 뒤의 미래를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지, 당장 눈 앞의 시험 하나, 문제 한 문제, 남과의 비교 같은 것들을 하지 말고 살자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20대가 그렇게 싫어하는 86세대와 다를 것이 없는 최악의 세대가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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