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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인생공부

01. 악의 평범성과 인간의 존엄성

by oculis 2023.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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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악의 평범성

20대 초반이었던 나의 정체성을 흔들었던 질문은 사회의 소외계층의 일반적 특성에 대한 것이었다. 가난한 자는 교육받지 못한다. 교육받지 못한 자는 범죄를 저지른다. 이런 추론은 옳지 못한 것이라 배웠지만 내가 본 세상에선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결국 사회적 약자는 악인인가에 대한 질문은 내 정체성을 흔드는 것이면서 나의 가치관을 결정하는 중요한 질문이었다.여기에 명쾌한 해답을 내려준 것이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것이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그저 군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상관에 충성하던 행위의 일부였음을 밝히며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누구든 악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2.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위의 목적에 대해 논할 때는 성선설과 성악설이 중심이 된다. 하지만 두 이론 모두 왜 인간은 선한가, 혹은 악한가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고전적인 믿음과 같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에 대한 현대 사회의 대답은 선 또는 악이 아닌 그것을 결정하는 요소에 대해 말한다.일반적으로 인간의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환경과 자유의지이다. 자유의지는 곧 사유가 되고, 현대 사회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이 사유의 유무가 된다.

3. 인간의 존엄과 사유, 니힐리즘

철학이란 무엇일까. 혹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에 대해 나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라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은 다른 영장류와 달리 사회를 구성하고 규칙을 만든다. 이 모든 문명적인 행위의 목적은 곧 인간 존엄성의 실현이고, 이러한 행위의 바탕에는 인간의 이성이 있었다.
일부는 인간존엄성의 실현이란 고통과 욕망에서 초월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보통은 우주의 먼지하면 드는 생각이다. 하지만 난 이것이 니힐리즘과 다를 것이 없다 생각한다.

 

니힐리즘은 문명적인 행위의 바탕에 인간의 이성이 아닌 신의 규율을 놓고 살았던 과거 세대의 실수이다. 이와 비슷하게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 초월등의 인간상이 있는데, 이것이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괴상한 이론으로 현대화되고 있다. 하지만 포기만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주장은 인간을 이성이 없는 고통과 욕망뿐인 존재로 정의하고 자의식을 파괴한다. 즉 기본적으로 인간의 선의지와 이성을 과소평가하여 인간의 존재 가치인 법과 규칙에 기반한 존엄성을 훼손할 위험성이 있다.


물론 아이히만에 대한 비판과 사유의 중요성이 현대 철학의 중심이 되어 끝없이 재생산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사유가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것임을 보여준다. 사유는 도덕과 같은 윤리적 문제부터 개인의 성장이나 국가의 성장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사유의 가장 큰 성질 중 하나는 사유의 생산성이다. 인간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포기를 강요하는 니힐리즘과는 방향이 정반대인 개념인 것이다.

4. 사유의 구체적 방법론

사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는 개인적으로 두 단계의 결론을 내렸다.

  1. 행위의 비물질적인 목적을 명확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서의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떤 행위의 목적의 궤적을 그린다면 나에게서 출발해 더 큰 세상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먼저 나를 이롭게, 그리고 주변 사람을 이롭게, 나아가 사회를 이롭게 해야 한다.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것은 무의식적이고 무지한 노력과 성취에 불과하다. 명확한 목적을 정의할 수 있고 이를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이 성장이자 발전이 된다.
  2. 행동의 의도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어떤 행위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의식적인 노력을 지속하여 성장이 쌓인다면 능력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 단계의 성장일 뿐, 사유하는 것은 아닌 것이 된다. 아이히만도 능력이 없는 인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행동의 의도를 돌아보지 않은 인간이었을 뿐이다. 항상 스스로의 삶을 세세한 사건까지 돌아볼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고 그 중 잘못된 부분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반성의 기준인 도덕법칙에 대한 내용은 철학을 전공할 기회가 생기면 말해보려 한다.)

20대의 반지성주의가 지속적인 화두가 되지만 사실 반지성주의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양극화이다. 지금도 서울대 연구실에서는 세상을 흔드는 논문이 쏟아지고 있지만 또 다른 사회에서는 클럽 도둑춤을 추는 것이 현실이다. 86세대가 집값을 올리고 사회를 분열시키면서도 자신의 정치진영을 위해 여야 할것 없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비이성적 행위를 해왔듯, 우리도 결국 그런 최악의 세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유해야 한다. 어떤 인간이 가치있는가? 하는 물음의 근원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탐구였으며 존엄한 인간은 곧 사유하는 인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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