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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인생공부

04. 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

by oculis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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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쾌락과 한계효용

사람은 배움이 부족할 수록 주변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채우려 든다. 인간의 돈, 명예,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유한함은 쾌락의 속성이며, 쾌락에는 한계 효용이 있다. 쾌락은 인간에게 사유의 기회를 줄 뿐 그 자체가 사유가 될 수는 없다. 사유하지 않은 인간의 쾌락이 한계 효용을 다하면 그 자리에는 핑계와 합리화, 변명만이 남고, 추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누군가는 거짓말로 자신의 빈 부분을 채우고, 또 누군가는 주변인의 삶에 자신을 대입하며 살아간다. 어디 법원 판사가 5살짜리 아들에게 우리나라 사법계의 고충을 말할까? 혹은 국민들의 준법정신에 대해 말할까? 그저 피곤한 심신을 현관에 벗어두고 아들이 받아온 칭찬 스티커, 선생님께 혼난 일을 들으며 햇님 유치원의 판사가 되어줄 뿐이다. 아들은 판사와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판사의 탈을 쓴 아버지와 대화를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5살 아들은 판사의 재판을 받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가 아는 판사란 그런 것이니.

2. 학습과 배움의 차이

학습과 배움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훈련과 노력은 분명히 돈과 명예보다는 사유의 여지를 많이 주는 것이지만,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사유가 될 수 없다. 물론 무엇이 사유인가? 라는 물음의 끝에는 그 무엇도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답변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니힐리즘과 유사하게 인간의 존재 가치를 흔들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나는 무엇이 사유에 더 가까운가? 하는 질문만 던지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반복과 훈련이 본질인 학습은 의식적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수능 점수를 믿지 않는다. 내 인생을 뒤바꾼 수능이지만 모두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뒤에서 다가오는 사회의 칼날을 피해 도망치며 이뤄온 결과를 두고, 나는 칼날에 쫓기는 내 모습을 보았고 다른 사람들은 칼날을 보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요즘같이 틱톡춤이 난무하는 세상에 학벌도 능력도 못 믿으면 뭘 믿겠냐 싶은데, 여기서 뭘 더 기대하다 실망하느니, 차라리 기대를 안 하는 게 나은 것이다.

3. 공부와 다른 "추상의 구체화"

내가 수능을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추상의 구체화였다. 아마 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들어보았겠지만, 이것이야 말로 인간 삶의 본질이자 도덕, 나아가 사유 그 자체가 된다. 물론 사전적인 의미야 생각이나 사상을 시각적 요소로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이걸 인간사에 대입하면 무의식 속 생각을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고민하고 반성하고 정리하는 것, 말하기 어려운 머릿속 생각을 풀어 설명하고,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된다. 이 과정의 훈련이 잘 이루어진 사람은 무의식의 어두운 부분을 정제하여 모두에게 무의식을 드러내고도 문제되지 않을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공자의 종심 (從心) 과 같은 개념이다. 어릴 적 들었던 종심의 개념이 내게 무의식 중에 이런 생각을 심어준 것인지, 20대를 지나며 자연히 든 생각이 우연히 들어맞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도덕성에 기반한 사유는 인종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같은 방향을 향해 있다.
 
삶의 시작과 끝을 이은 이 100년의 시간에 먼지가 아닌 무엇을 남기고 싶느냐고 한다면 추상의 구체화라고 할 것이다. 나머지는 구체화를 위한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일기를 쓰다가 맘에 드는 단락이 생겨서 살을 붙이다 보니 끝이 없어서 오랜만에 포스팅이나 하자 싶었다. 첫 단락만 묘하게 느낌이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ㄹㅇ 유튜브 썸네일;)
요즘 티스토리가 뜸한데 너무 바쁘다. 안 바쁠 때 또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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