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담/인생공부

02. Giver를 위한 사회, 애덤 그랜트의 조직심리학

by oculis 2023. 4. 26.

내 옆의 개발자, LINT 를 오픈하였습니다.

웹사이트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주식 가격을 예측하고 랭크를 올리는 커뮤니티, 오떨 을 오픈하였습니다.

지금 접속하고 예측을 시작해보세요.

728x90

1. 기버, 테이커, 매처

이전 글에서 행위의 비물질적 목적추구와 의식적 반성을 지속하는 것을 사유라고 하였고, 사유하는 사람이 인류의 존엄성을 지키는 존재가 된다고 하였다. 오늘은 조금 어려운 얘기에서 벗어나 표상적인 사회에서의 실천적 사유의 방법론을 잘 제시해주는 애덤 그랜트의 조직심리학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기버, 테이커, 매처는 주고 받음의 양에서 비롯되는데, 객관적으로 남에게 내어주는 성격이라면 기버, 같다면 매처, 주는 것이 적다면 테이커가 된다.

2. 사유와 이타성

기버가 자본주의 사다리의 맨 아래와 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언가를 내어주는 Give의 양가성을 보여준다. 나는 이러한 이타성에 타의성과 자의성, 반자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1. 단순히 돕는 것이 좋아서, 혹은 습관이 되어서, 어린시절의 훈육의 습관으로 생긴 것이 타의적 이타성이다.
  2. 반면 반자의적 이타성은 자신에게 take가 되어 돌아올 타인의 자발적 give와 그것의 선순환을 기대하며 give를 하는 것이다. 애덤 그랜트가 강조하는 것도 이런 반자의적인 give를 통해 현명한 giver가 되는 것이다.
  3. 하지만 이타성이 순수히 자의적이라면 행위의 물질적인, 혹은 심리적인 표상적 손익 너머의 것을 생각하게 된다. 표상과 사유를 구분하게 되는 것인데, 이 순수하게 자의적인 이타성이 곧 사유가 된다.

 

그렇다면 표상이란 무엇이고 왜 순수한 자의성은 사유의 대상이 될까? 아렌트는 [정신의 삶]에서 "인식의 충동과 사유의 필요성을 구분하라" 고 했다. 아주 저렴히 이해한 바로는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을 더 많이 아는 것 (표상)이 앞으로의 도덕판단 (사유)에 큰 영향을 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타성도 마찬가지이다. 표상적인 손익에 대한 생각을 버린다면 그것이 곧 사유가 된다.

 

쉽게 말하면 무언갈 바라지 않고 선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큰 의미를 준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타의적 이타성과 다른것이 뭘까? 그냥 같은 호구 아닌가? 싶을 수 있다. 이때 서로 받은 만큼의 축의금을 주고받는 예를 들어보자.

  1. 친한 친구에게 20만원의 축의금을 주면서 무언갈 바라본 적이 없고, 그것이 잘못되었다 생각하면 타의적이다.
  2. 친구에게 같은 금액의 축의금을 받는 것이 내 인간관계에 매우 중요하고 그 이상을 바라본 적이 없다면 반자의적이다.
  3. 같은 금액의 축의금은 대부분 당연하고, 그 친구와 이후에 시간날 때 만나서 의미있는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것이 자의적이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3번을 선택하겠지만, 이건 아주 일반적인 경조사에서의 예시이고, 잘 알려진 사례라서 사람들이 잘 지키는 것일 뿐, 일상에서는 이와 반대로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

3. 선진 사회와 이타성

많은 사람이 taker를 자청하는 이 사회를 보면서 문득 과거에 봤던 대통령의 연설문이 떠올랐다.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보며 살아라, 모난 돌이 정맞는다. 라고 했던 비겁한 600년의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 는 것이었다. 이준석 전 대표의 후보시절 대구 연설문의 "다른 의견을 얘기하는 것도 애국자, 같은 의견을 얘기하는 것도 애국자라, 이제는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공존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와 함께 각각 좌우 정치인의 연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되었다.

 

한국 사회가 너무 빠르게 달려버린 것 같다. 용감하게 독재의 타도를 외치던 86세대가 부모가 되어 "눈치 보고 살아라", "정 맞는다" 와 같은 말로 자식들을 다그치며 그들을 taker로 길러버렸다. 옆에서 사회에 저항하다 물결에 말려 휩쓸려간 동료들을 보며 든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기버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들어버려, 이제는 이 사회가 기버를 욕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선진 사회는 이타적이다. 물론 나도 순수한 이타주의자인가 하면 그럴 여유도 없거니와 거기에 떳떳하지도 않다. 하지만 2,30대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이런 이타주의의 종말에서 비롯된다. 책임없는 쾌락, 성별 갈등, 세대 갈등, 지역과 직업갈등까지 사실 이기심이 근원 아닌가. 그러니 이제는 사유의 한 축으로서의 이타성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나와 주변을 위해.

728x90

댓글